## 들어가며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한국형 학교시민교육 원칙'을 확정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2016년 교육단체가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처음 제안한 지 꼭 10년 만의 결실이다.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 곳곳을 갈라놓는 지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서 시민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한목소리를 냈다. 그 합의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7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교실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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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텔스바흐 합의 — 50년 전 독일이 먼저 던진 질문
1976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작은 도시 보이텔스바흐에 좌우 성향이 다른 교육학자와 정치교육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정치 교육이 따라야 할 최소한의 원칙에 합의했고, 이것이 이후 독일은 물론 전 세계 학교시민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 **강압(주입) 금지**: 교사는 자신의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논쟁성 유지**: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한쪽 입장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 **정치적 판단·행위 능력 배양**: 학생이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판단하며, 참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핵심은 "가르치지 말라"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라"다.
## 한국형 원칙은 무엇을 담았나
이번 원칙은 전문과 3장 14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정신을 한국의 교육 현실에 맞게 옮겨 왔다.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주입을 금지하되, 옳고 그름이 분명한 문제는 분명하게 가르치도록 해 학생의 시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학생과 교사를 함께 보호**한다는 점이다.
* **학생 보호**: 학생들이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의견을 표현하며, 학생자치와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정성을 보장한다.
* **교원 보호**: 교원의 정당한 학교시민교육 활동이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하고, 이 때문에 민·형사상 및 행정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조항(제5조, 제14조)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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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교원 보호 조항이 중요한가
지금 우리 교실은 "논쟁을 피하는 교실"이 되어 있다.
선거, 노동, 환경, 젠더, 역사, 기후 같은 주제를 수업에서 다루려 하면 교사는 먼저 계산부터 한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떤 민원이 들어올지, "정치 편향 교사"라는 딱지가 붙지는 않을지, 녹음된 수업 한 토막이 온라인에 어떻게 퍼질지.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난 글에서 다룬 MBC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겹친다. 신고와 민원의 위험이 교사 한 사람에게 쏠리는 구조에서는 생활지도가 멈추고 현장체험학습이 멈추듯, **시민교육도 멈춘다.** 교사가 입을 닫으면 아이들은 논쟁하는 법을 교실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골라 주는 영상과 댓글에서 배운다. 교실에 번지는 혐오 표현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원칙이 교사의 정당한 시민교육 활동을 **책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명시한 것은 선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교사를 지키는 것이 곧 아이들의 배움을 지키는 일이라는 원리가 시민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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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등학교에 더 절실한 이유
중등학교에서 시민교육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 만 18세 선거권으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는 이미 유권자가 앉아 있다.** 만 16세부터는 정당 가입도 가능하다.
* 학생자치회, 동아리, 봉사·사회참여 활동 속에서 학생들은 이미 **작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 청소년기는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며, 동시에 가짜 뉴스와 혐오 표현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권자인 학생에게 "학교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시민교육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고, 근거를 따지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토론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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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이 교실에 닿으려면 — 학교와 교육 당국의 과제
원칙이 확정되었다고 교실이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좋은 원칙이 문서로만 남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1. **법령과 지침으로 구체화**
교원 보호 조항이 실제 분쟁 상황에서 힘을 가지려면, 관련 법령과 교육청 지침에 그 취지가 반영되어야 한다. 민원과 신고가 들어왔을 때 "정당한 학교시민교육 활동"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절차를 분명히 해야 한다.
2. **논쟁적 주제 수업 가이드와 자료 지원**
쟁점별로 여러 관점을 균형 있게 담은 수업 자료, 토론 수업 설계 예시,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밝힐 때의 유의점 같은 **실제로 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원칙만 주고 수업 준비는 교사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3. **학교 단위 공동 대응 체계와 연계**
시민교육 수업과 관련한 민원도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가 받는다**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학교 민원대응팀이 시민교육 원칙을 기준으로 1차 판단하고, 교사를 대신해 설명하고 보호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4. **학생자치의 실질화**
학생이 불이익 걱정 없이 의견을 낼 수 있으려면, 학생회와 학급회의가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실제로 학교 운영에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의 목소리가 무엇을 바꾸었는지 투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5. **교사 연수와 학부모 공유**
교사에게는 원칙의 취지와 수업 적용 방법을, 학부모에게는 "학교시민교육은 특정 입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 원칙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곧 신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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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맺으며
보수와 진보가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좋은 시민교육의 한 장면이다. 생각이 달라도 공동의 규칙에는 합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민주주의다.
10년을 기다린 원칙이 교실에 닿으려면, 이제는 학교가 움직일 차례다. 교사가 두려움 없이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고, 학생이 불이익 걱정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교실. **논쟁을 피하는 교실에서 논쟁할 줄 아는 시민을 기르는 교실로.** 그 변화 역시 교사 한 사람이 아니라 교육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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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오마이뉴스, 「한국형 학교시민교육 원칙, '보수·진보' 만장일치 확정」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8147
* 교육플러스(te.co.kr), 「[오늘의 교육쟁점] '논쟁 피하는 교실' 바뀔까…'한국형 보이텔스바흐' 첫발」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9407
* 아시아투데이, 「혐오 표현 번지는 교실, '학교시민교육'이 답 될까?」 —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723010008630
* 국가교육위원회,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 — https://www.ne.go.kr/platform/resources/nec/download/downoadFile\_20260720.pdf
* 관련 글: 「교사가 혼자가 아닐 때, 아이들도 배울 수 있다」(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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